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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더 깊어질 수 있다면...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언론문화포럼 회장)  |  webmaster@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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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9  12: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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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버리고 SNS와도 아예 담을 쌓고 살 수 있을까? TV와 라디오를 멀리하고 뉴스는 오로지 신문으로만 섭취하고 살아도 불편과 지장이 없을까?

책상에 컴퓨터를 7대나 놓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정보시대에는 숨을 곳이 없으며 은퇴도 어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위와 같은 절연(絶緣)과 자발적 단절·격리는 정말로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두 달 동안 모든 뉴스 앱을 끊고 신문만 세 가지를 보고 살아온 사람의 경험담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아니라 뉴스로 먹고사는 기자가 그렇게 했으니 더 관심이 쏠립니다.

뉴욕타임스의 IT분야 기자인 파하드 만주는 모든 뉴스 앱을 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들어가지 않고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지역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세 신문만 매일 아침 40분씩 읽었다고 합니다.

그의 최근 칼럼 ‘두 달 간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처음엔 당연히 불편했지만 곧 삶이 바뀌었습니다. 뉴스 생산자로 살다가 반대로 뉴스 소비자의 역할을 돌아보고 신문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면서 신문을 잘 만드는 게 뭔지 궁리하게 됐다고 합니다.

17명이 사망한 플로리다 총격사건의 경우, 발생 사실을 안 뒤 24시간 동안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많은 뉴스를 놓친 셈이지만 범인이 좌파 무정부주의자라거나 IS멤버라는 것은 알고 보니 가짜 뉴스와 거짓이었다고 합니다. 언론은 이름이 공개되기도 전에 그를 시리아 저항단체와 연결 지었고, 유력 정치인들까지 이 사건이 올해 18번째 교내 총격사건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퍼 날랐습니다.

그는 온라인에서 접하는 뉴스 중 엄청난 양이 실은 진짜 뉴스가 아니라 한마디씩 하는 논평에 불과하며 이런 논평은 현상을 명확하게 보도록 돕기는커녕 독자들의 이해를 왜곡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월 23일 발생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중지)이 사흘 만에 종료된 사건의 경우, 뉴욕타임스에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함께 그 과정의 정치적 계산과 막전막후 상황을 해설한 기사가 나란히 실렸지만 온라인에는 해설 기사에 대한 의견만 넘쳐났습니다.

종이신문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각종 뉴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암흑 속에 혼자 서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주머니 속에서 하루 종일 울리는 뉴스기계(스마트폰)를 끄니 늘 목줄을 쥐고 흔들던 괴물에게서 풀려난 것 같았고, 뉴스를 놓쳤다고 불안해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뉴스를 확인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느린 현실과 달리 기술은 빠릅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오보 여부를 확인할 시간도 없이 기정사실로 전달합니다. 앱과 플랫폼을 장악한 뉴스 공급자들은 압박감과 경쟁 때문에 익지 않은 날것들을 마구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뉴스를 끊고 보니 시간을 덜 들이고도 더 제대로, 폭넓게 정리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총격사건도 무분별한 속보를 놓친 덕분에 오히려 그날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거지요. 하루 늦게 읽긴 하지만 사건 발생 후 뉴스가 내 문 앞에 도달하기까지 수백 명의 전문가가 나를 대신해 사실 여부와 그 배경을 확인해주는 덕분에 ‘이게 거짓은 아닐까’ 하는 걱정 대신 뉴스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아울러, 수시로 뉴스에 노출되지 않다 보니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달 동안 6권의 책을 읽고, 도예 강좌에 등록하고 남편과 아빠로서 가족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됐습니다. 제작·배달시간의 제약 때문에 뉴스 보도와 논평에 즉각적일 수 없는 신문의 한계가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하면 억지일까요?

파하드 만주의 결론은 신문 그 자체가 좋다기보다 소셜 미디어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읽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소셜 미디어를 끊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깊이보다는 속도, 사실보다는 핫 이슈, 잘 분석된 뉴스보다는 노련한 선전가들의 말이 더 칭송받고 보상받는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들 온라인에서 로그오프하고 신문을 읽어야 하나? 가능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주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유료독자 360만 명 중 4분의 3이 디지털로만 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신문은 비쌉니다. 뉴욕 외곽에 사는 사람은 한 달에 81달러(약 8만6,300원)를 내야 뉴욕타임스를 구독할 수 있는데, 1년이면 최신형 아이폰을 한 대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신문을 안 보기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신문은 중요하지 않은 뉴스원입니다.

그러니 뉴스 소비자는 하루 한 번만 뉴스 앱을 보거나 잘 정리된 아침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식으로 생활을 바꾸면 좋을 것입니다. 속보를 쏟아내는 매체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매체를 선택하라는 것이지요. 만일 진짜로 큰일이 터지면 어떻게든 알게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뉴스를 생산하고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로서는 사실 확인을 더 철저히 하고 기사의 깊이와 넓이를 더 충실히 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신문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생존 위기의 시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숨가쁜 상황일수록 더 원리 원칙이 중요해집니다.

신문은 지금 한쪽에 치우친 주장을 퍼뜨리고 증폭하는 ‘에코 챔버(Echo-chamber) 현상’과, 생각 없이 남의 행동과 주장을 따르는 ‘밴드 왜곤(band wagon) 효과’의 질곡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정도(正道), 신문의 제 기능을 환기해준 파하드 만주 기자의 칼럼이 반갑습니다.

뉴스의 디지털화는 우리가 정보를 선별해 처리하는 과정을 망쳤지만, 이미 시대의 대세이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부터도 신문을 얼마나 충실하게 읽고 있으며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집니다’라고 했던 2014년 신문의 날 표어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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